2010/05/17 00:09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Mr. Nexus의 시선] 분류없음2010/05/17 00:09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다. 역시 만화가 원작인 영화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중압감과 그 대사에 담긴 의미가 상당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를 더 역동적으로 만들어 주었던것 같다.
1. 야망을 위해 모든것을 버린 남자. 이몽학
그는 영화 전반에서 참 많은 것들을 버린다. 자신의 여자였던 백지(한지혜)를 버리고 한 때 친구였던 황정학도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버린다. 또한 자신의 야망을 위해 대동계의 수장마저도 '버린다'.
" 황정학이가 그러더군. 양반은 권력 뒤에 숨고, 광대는 탈 뒤에 숨으며, 칼잡이는 칼 뒤에 숨는다고. 난 그런 세상이 싫더라."
이 대사에서 황정학과 이몽학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미 영화 전반에서도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지만, 이 대사만큼 확실히 그들의 생각을 반영해 주는 것이 또 없다.
이 대사에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숨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신분이 명확히 그어진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 자신이 속한 것에 숨는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이고, 그것을 강조한 황정학과는 달리, 이몽학은 그것이 싫다고 말한다. 즉, 신분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마음에 안든다, 더 나아가 그런 세상을 바꾸어 버리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결국 왕이 있는 한양까지 반란군을 이끌고 당도했지만, 왕은 이미 도망가버리고 텅 빈 왕궁앞에 서게된다. 결국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인가? 겨우 이 자리(왕좌)에 앉으려고 나(백지)를 버린거야? 그러한 물음에 그는 후회에 사로잡힌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것을 버린 것인가?
이 대사에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숨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신분이 명확히 그어진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 자신이 속한 것에 숨는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이고, 그것을 강조한 황정학과는 달리, 이몽학은 그것이 싫다고 말한다. 즉, 신분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마음에 안든다, 더 나아가 그런 세상을 바꾸어 버리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결국 왕이 있는 한양까지 반란군을 이끌고 당도했지만, 왕은 이미 도망가버리고 텅 빈 왕궁앞에 서게된다. 결국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인가? 겨우 이 자리(왕좌)에 앉으려고 나(백지)를 버린거야? 그러한 물음에 그는 후회에 사로잡힌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것을 버린 것인가?
2. 달을 쫒는 맹인검객. 황정학

사실상 소름이 끼칠 정도의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준 황정학이란 캐릭터는 뛰어난 입담으로 영화전반에 익살스런 분위기를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익살만이 아니라,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뼈있는 말들은 관객들이 5분전에 웃었던 말을 다시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코 웃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몽학이는 지는 해를 쫒아갔는데, 너한테서 녀석은 구름이냐? 달이냐?"
이몽학은 결국 한양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고, 황정학은 뒤따라온 견자(백성현)에게 다음처럼 말한다. 여기서 지는 해란 조선의 임금, 다시 말하자면 임진왜란에 내란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럼 여기서 그가 묻는 달과 구름은 무엇인가?
구름이란 달을 가리는 존재다. 여기서 달이란 또 무엇인가? 바로 영화 중간 이후부터 황정학이 계속해서 견자에게 묻던 질문이 바로 "달이 떴냐? 이제 슬슬 뜰 때가 됬는디?"다. 즉, 달이란 황정학이 그리던 이상향을 말한다. 아마도 그러한 상황에서 이몽학은 그에게서 '달'을 가리는 '구름'일 것이다.
3. 당대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던 가문의 서자. 견주(견자)

구름이란 달을 가리는 존재다. 여기서 달이란 또 무엇인가? 바로 영화 중간 이후부터 황정학이 계속해서 견자에게 묻던 질문이 바로 "달이 떴냐? 이제 슬슬 뜰 때가 됬는디?"다. 즉, 달이란 황정학이 그리던 이상향을 말한다. 아마도 그러한 상황에서 이몽학은 그에게서 '달'을 가리는 '구름'일 것이다.
3. 당대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던 가문의 서자. 견주(견자)
서출이라는 이유로 제사상에 술을 올리지도 못하는 처지의 그는 제사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광으로 끌려가서 뭇매를 맞는다. 뒤따라온 아버지에게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굳을 견에 기둥 주'가 아니라, '개 견에 아들 자, 견자'라고 부른다고 하소연한다. 그런 견주에게 아버지는 다음처럼 말한다.
"서출이 개새끼면 넌 개새끼 맞아. 지금의 왕도 서출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꿈없이 살래!"
이후로도 견주에게 꿈 얘기가 나온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적에 견주는 사실상 꿈이 없다. 아버지가 이몽학에게 학살당한 후에는 단지 이몽학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남게된다. 그에게는 꿈이 없다. 영화 중간에 이몽학의 기생인 백지가 견주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몽학을 이길 수 없어. 왜냐하면 당신은 꿈이 없으니까."
또한 견자는 유교의 도리와 법도에만 얽매여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문에 대해서 불만을 품는다. 이몽학에게 학살당한 친족들의 제사를 지낼때도, 그는 홀로남은 자신의 친족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평생 제사나 지내. 이몽학이는 내가 잡을 거야"
이렇게 당대에 만연해 있던, 실용과는 거리가 먼 유교적 사상을 비판하면서 그는 직접 칼을 뽑아들었다는 면에서는 다른 친족들에 비해서 훨씬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이몽학과 황정학의 대결구도가 너무나도 강해서, 견자의 성장스토리가 많이 부각되지 못한 점이다. 또한 견자가 황정학에게 정식으로 검술을 배우지는 못하고, 잠깐 배우는 정도인데도, 나중에 수십명의 왜구들을 칼로 쳐내는걸 보면 뭔가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조금 아쉬운 점이다.
4. 비운의 기생. 백지
이몽학의 연인이자, 그 만을 바라보고, 그를 따르고 싶어한다. 그러나 야망에 미쳐버린 이몽학에게 버림받고 그를 찾아 다시금 이렇게 묻는다.
"겨우 왕 자리에 앉으려고 날 버린거야?"
그녀는 이몽학과는 현실세계에서 같이 존재할 수 없는 슬픈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곤 그에게 외친다.
"꿈 속에서 만나요."
그들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은 현실이 아닌 '꿈'일 뿐인 것이다.
5. 결론 : 넌센스를 벗어나다.
전쟁 중에 상대 당파만을 비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가신들도 넌센스다. 서인들이 왜군이 온다는걸 주장하니까 그에 반대해서 왜군이 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왜군이 쳐들어올지 뻔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반대 이유는 하나, 바로 상대 당파의 주장에 반대되는 주장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기네 당파의 장수의 선택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가신들도 넌센스다.
왕궁을 버리고 벗어나는 왕도 넌센스요, "저희를 죽이고 가소서!" 라고 외치는 가신들을 진짜로 다 죽이고 가는 상황도 넌센스다.
반란군이 "반란군이 쳐들어 왔으면 막아야 할 것 아냐! 이것들 다 어디로 갔어!" 라고 외치는 상황도 넌센스요, 왜적이 궁에 당도했는데도, 서로를 향해서 칼을 겨누고 있는 이 두 남자(견자와 이몽학)도 넌센스다.
이 모든 넌센스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열망을 담은 것이 바로 '구름을 벗어난 달' 인 것이다. 그들의 이상향은 달리 없다. 단지 상식이 통하는 세상, 즉 달인 것이다. 다만 이 달은 현재 구름 속에 있어 그 빛이 제대로 비추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바로 '넌센스'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달이 구름을 벗어나 새롭게 자신들을 '비추길' 열망한다.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말이다.

